Project Description

 

모스크벽 뒤의 또 다른 풍경

아라비아 반도는 사막의 아라비아, 보석의 아라비아, 행운의 아라비아 세 가지로 나뉘어 불린다.

이중 ‘행운의 아라비아’(Arabia Felix)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예멘이다.

예멘은 흔히 ‘솔로몬과 시바’의 나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시바왕국은 BC 950년부터 BC 115년까지 이어져오다 AD 6세기까지 힘야르 왕조에 의해 통치되었다.

AD 525년에는 에디오피아에 의해 정복당했으며, AD 575년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7세기에 이르러 예멘은 정식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며, 9세기에 라쉬드 왕조를 수립하였다.

1517년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되어 1918년까지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예멘이 행운의 아라비아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고대부터 향료의 나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유리한 곳에 위치한 예멘의 향료는 홍해 연안을 따라 페트라로 교역되었고,

그중 일부는 이집트로 교역되고 나머지는 그리스나 시리아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수출되었다.

향료는 해로를 통해 중국에도 전해지는 등 예멘은 홍해에 위치한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동서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행운의 아라비아로 알려진 예멘의 향료는 이후 모카커피와 더불어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 유럽지역에도 널리 퍼져나갔다.

예멘은 우리처럼 강대국의 지배와 분단의 아픔을 공유한 나라로 한국에도 알려졌다.

탈냉전 이후 독일이 통일되고 예멘도 국제사회의 변화와 사회적, 종교적인 이유로 급격한 통일 논의가 진행되어 1990년 5월, 남북 예멘이 통일국가가 되었다.

예멘의 통일로 한국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았고, 한국의 학자들은 예멘의 통일 과정을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유사성도 많은 예멘은 중동국가 중 유일하게 아랍인의 독특한 기질과 문화적 전통을 이어오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번 예멘 사진촬영은 ‘다른 사람 또 다른 풍경’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딛고 있는 풍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풍경 안에 존재하는 인간은 굴레와 족쇄와 같은 그곳에서 삶을 영유하기 위해 싸우고 투쟁한다.

그 투쟁 끝에 풍경과 동화하고 풍경 속에 딛고 서있는 인간들을 발견할 수 있다.

풍경은 단지 떨어져 있는 무엇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하는 터전이며 딛고 일어나는 풍경이다.

사람과 풍경 사이에 관계가 존재하고 그 관계를 보는 것이 이번 사진촬영의 커다란 틀이었다.

관계는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멘의 2월은 우리로 치면 늦여름과 같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지만 그늘로 들어가면 시원하다.

밤이면 낮은 기온으로 인해 외투를 입어야 한다.

고도가 높아 일교차가 심하며 기압도 낮아 잠깐씩 두통이 오곤 한다.

예멘 국토의 중심부는 산악지대이며 대도시인 수도 사나와 타이즈 등도 모두 고지대에 있다.

부족국가였던 예멘에서 부족 간의 전투가 일어나면 높은 곳에 있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멘의 수도 사나는 올드 사나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올드 사나는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 중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300~400년 된 건물들이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아직 옛 모습 그대로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좁고 긴 골목을 거닐면 옛날의 영화와 번영이 보이는 듯하다.

 처음 올드 사나에서 마주친 남자들은 잠비아라는 칼을 앞섶에 차고 다니고, 여자들은 모두 부르카를 두르고 있어 두려움과 신비감이 함께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싸딕(친구), 수라(사진)를 외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오며, 부르카 사이로 보이는 여인들의 눈에도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과 미소가 가득했다.

어디든 그곳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느끼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와 통역을 맡은 여동생은 밖으로 나갈 때면 항상 머리를 가려 얼굴만 내놓고 긴치마를 입었다.

나 역시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 대지 않고 특히 여자들에게는 조심했다. 그곳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할 때 이방인인 우리 역시 존중받을 수 있다.

테러와 납치로 대변되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선입견도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다.

실제 이슬람권에서 여행자는 도움을 줘야 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점심 때 거리를 거닐면 식사나 차를 하고 가라며 붙잡히는 일이 다반사였고, 식당에선 대신 식사비를 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을 하며 이들에게서 받았던 배려와 선의는 선입견과 편견을 사라지게 했고, 어느새 나는 염치없이 도움 받고 배려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카에선 사라져버린 그 옛날의 번영을, 타이즈에선 우리의 다랭이논을 닮은 산악지대의 계단식 밭을 보면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아름답게 만들어진 풍경을 통해 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과 대처에 감탄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만들어져 지역의 특색에 맞게 지역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리고 그 풍경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과 그 영향을 받은 인간 역시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왔다.

종교는 이처럼 발생한 지역의 지리적인 특징과 문화적인 특징을 공유한다.

이슬람문화의 특징 또한 아라비아 반도의 풍경과 닮아 있다.

풍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문화와 역사와 종교라는 것이 인간들에게 어떤 편견을 가져다주는지 알게 되었다.

 2009년 어느날